자연계에서도 유형(有形)으로 눈에 잘 드러나는 것들은 목화금수로 설명하기 쉽고, 무형(無形)으로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토로 설명하기 쉽다. 텅 빈 공(空)은 오행상 토에 속한다. 관절강(關節腔)이라 불리는 뼈와 뼈 사이[실제로는 활액으로 가득 차 있지만 관절은 몸속의 빈 공간이라는 뜻으로 강(腔=肉+空)이라 한다]는 몸속 빈 공간이 되어 스스로를 비우면서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한다.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아야 마디가 되고 토가 될 수 있다. 목에서 화로 분산할 때 토가 중재해주고, 화에서 금으로 수렴될 때 역시 토가 중재해준다. 중재자는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즉, 관절은 스스로를 비우고 중재자 역할을 하는 마디이다.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듯, 사람의 뼈도 토인 마디에서 자란다. 키가 크는 것은 관절 부위인 골단(骨端)의 성장판이 자라기 때문인데, 성장판은 부드러운 연골조직에 가깝고 관절강의 활액 등으로부터 보호와 자양을 받는다. 이때 관절은 뼈와 뼈를 연결하며 토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뼈의 성장까지 돕는 어머니로 역할한다. 즉, 무에서 유가 창조되듯 텅 빈 것 같은 마디에서 뼈가 자라난다. 목화금수가 토의 현신(現身)이듯, 빈 듯한 마디의 도움으로 성장판이 자라 뼈를 이룬다.
숲은 나무로 가득 찬 듯 보이지만, 나무 밑에는 대지가 있어 나무들이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랄 수 있게 도와준다. 마디도 마찬가지여서, 성장기에는 골단의 성장판에서 뼈가 잘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성장이 끝난 후에는 연골과 연조직, 활액낭 등으로 뼈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마디는 뼈가 자랄 수 있게 도울 뿐만 아니라 자기가 낳은 자식을 보살피듯 평생 뼈를 보호한다. 연골로써 뼈와 뼈가 맞닿는 충격과 마찰을 흡수하고, 활액을 생성하여 윤활과 영양을 보충하며 인대와 힘줄 등으로 감싸 관절을 이루는 뼈의 골단을 보호한다.
이때 연골은 65~80%가 물로 이루어져 있는 초자양(硝子樣)의 물렁뼈로서, 달리기를 할 때 체중의 약 10배에 해당하는 충격을 흡수·분산시킨다. 어떠한 첨단 소재로도 연골보다 낮은 마찰력을 가진 것을 만들 수 없는데, 인간의 기술보다 자연의 기술이 더 앞선 셈이다. 그리고 관절의 활액은 이러한 연골의 마찰과 마모를 줄이기 위한 윤활제로 역할할 뿐 아니라 영양 공급체이다.
대지는 무한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유한하다. 인체의 토로 추상될 수 있는 관절 역시 마찬가지이다. 삼라만상을 자양하는 대지와도 같이, 인간이 마음껏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윤활관절’은 평생 희생으로 일관된 토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처럼 노예처럼 끊임없이 평생을 희생하던 마디도 외상이나 영양장애, 비만에 의한 과부하 등으로 약화되고 만다.
희생적으로 역할하던 관절 마디의 기본 구조는 모두 동일하므로, 나이가 듦에 따라 모든 마디가 어쩔 수 없이 약해지고 닳는 것은 피할 도리가 없다. 다만 약화된 것을 강화시켜 고치는 수밖에 없다. 강화시켜 고치는 방법은 한의학에서 곧 보법(補法)으로 치료한다는 의미로 통한다. 마디가 가지고 있는 토의 성질과 끊임없는 희생을 이해한다면 기존의 사법(瀉法)만으로는 안 된다. 관절을 이루는 연조직과 동일한 성질의 약물인 교제(膠劑)를 통해 보강되어야만 한다.
교질은 관절을 이루는 연조직, 특히 인대와 힘줄의 주성분이다. 그리고 관절은 마디로서 토의 역할, 토의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인체에서 교질이 분포되어 있는 곳은 관절을 포함한 대부분의 결합조직이라는 점이다. 즉, 교질은 전신에 퍼져 있는 결합조직의 주성분이다.
결합조직은 인체에서 가장 많은 양의 조직으로, 주로 조직(tissue)과 장기(organ)를 지지하거나, 다른 조직들을 서로 묶기도 한다. 성긴 결합조직은 다양한 장기를 완충하여 보호하고 포장하기도 하고, 단단한 결합조직은 인대나 힘줄처럼 강하게 접합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결합조직의 종류로는 근육과 피부를 결합시키는 근막(fascia), 인대와 힘줄, 전신 피부의 진피, 대동맥의 벽, 연골, 뼈 등이 있다. 결합조직은 전신에 분포하며 말 그대로 인체를 지지하고 결합하는 역할을 한다.
교질을 주성분으로 한 관절이 마디이고 토이듯, 교질을 주성분으로 하는 온몸의 결합조직은 스스로의 개성은 낮추고 다른 조직이나 장기를 돕는 어머니의 역할을 한다. 모든 결합조직이 인체의 빈 곳을 채우는 보공(補空)이 되어 토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관절의 종류
요가를 하는 사람들이나 서커스 곡예사들을 지켜보면, 그들의 마디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기에 저렇게까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하지만 사실, 그들도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몇 가지 종류의 마디를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신의 작품인 인간의 마디를 인간이 흉내 내어 각종 도구로 실생활에 응용하고 있으므로, 거꾸로 인간이 응용한 도구로써 신의 작품인 인간의 마디를 설명하고 이해해보도록 하자.
먼저 구와관절(ball-and-socket joint)이다. 구와(球窩)라는 표현보다는 ‘공과 공이 들어가는 구멍’이라는 영어식 표현이 훨씬 쉽게 다가올 것이다. 구와관절은 거의 모든 방향으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마디로, 엉덩이관절에서 볼 수 있다. 태권도의 화려한 돌려차기나 발레의 다리 동작을 관찰해보면 구와관절의 광범위한 동작 범위를 짐작할 수 있다.
경첩관절(hinge joint)은 문짝을 문틀에 붙이기 위해 쇠로 만든 경첩처럼 한 방향으로만 운동이 가능한 관절이다. 무릎관절과 팔꿈치관절이 대표적인 예로서, 무릎관절은 인체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관절이다.
무릎관절은 인간이 직립한 이래로 네발짐승에 비해 훨씬 많은 체중 부하를 받게 되었고 그 구조도 다소 불안정하다. 물론 튼튼한 건(腱)과 인대들로 묶여 있고 단단한 슬개골(膝蓋骨)로 보호받지만 퇴행성 변화에는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다. 다시 네발로 걷기 싫으면 평소 무릎을 튼튼하게 만들고 잘 보호하는 것이 최상책이다.
그 외 말의 안장처럼 생겼다고 해서 안장관절(saddle joint), 좌우와 앞뒤의 운동만 가능한 평면관절(plane joint), 축을 중심으로 제한된 회전운동을 하는 차축관절(pivot joint) 등이 있다.
마디는 인체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수행하기 위해 각각의 관절 부위에 따라 오묘하고 놀라운 결합을 이루고 있다. 역학적으로 완벽한 각 마디의 결합은 〈백조의 호수〉에서 춤추는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몸짓, 평행봉에서 시연하는 체조 선수의 힘찬 동작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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